여행/맛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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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오고 출출한데 파전에다 막걸리 한 잔 어때?"

이 말을 꺼내자 친구들이 하는 말이 "이야! 우리 콘짱 한국사람 다 됐네"라고 열 명 중 열 명이 그렇게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비·파전·막걸리'는 하나의 관련어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비가 왔다'는 이유로 파전 혹은 막걸리가 생각난 적이 없다. 햇볕이 뜨거운 한여름에도, 밥을 배부르게 먹은 뒤에도 당긴다. 즉 항상 내 몸은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데 마침 비가 왔을 뿐이다. 그리고 '비가 왔다'는 전제조건을 제시해야 '치킨에다가 맥주' '삼겹살에다가 소주'를 제안한 친구들의 의견을 전복시킬 수 있다. 내게 있어 '비'라는 단어는 마법의 말, 파전에다가 막걸리를 꼭 먹고 싶을 때 내는 으뜸패다.

봄비가 조용히 내리는 어느 날 밤. 내 몸이 그 어느 때보다 세게 주인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야, 아까부터 비오는디 너 좋아하는 그거 안 묵어도 쓰겄냐? 묵어줘야제."

그래, 먹어줘야지. 밤도 늦었으니 내일 오전에 소풍 겸 담양 행을 결정했다. 현재 4만8000명의 인구를 가진 담양군은 1읍 11면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라남도에 속한다. 광주에서 담양까지는 시외직행버스를 이용하면 40분, 담양군내버스를 이용해도 1시간이면 간다. 택시의 기본요금보다 싸게 갈 수 있으므로 주말이면 친구끼리 바람 쐬러 가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죽녹원(竹綠苑)과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은 담양 근교 연인들의 인기 데이트 코스로 꼽힌다.

 

버스에서 내렸다. 울기 그만둔 하늘은 새하얗고 눈부셨다. 주변 산들은 뽀얗고 봄의 도래를 예감시켰다. 꼭 수묵화 그림 속에 들어온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귀를 기울이면 조선 선비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가사문학의 고장이라 불리기도 하는 담양에는 면앙정·식영정·송강정 등 조선시대에 지어진 수많은 누정들이 분포돼 있다. 바로 가사의 무대가 되고 산실이 된 명소들이다. 거기에 걸터앉아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재밌다. 500년 전 옛사람들은 여기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을까? 어떤 대화를 나눴었을까? 어떤 미래를 그렸을까? 지금의 우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담양에 전해진 18편의 가사와 목판, 유물, 관련도서 등은 2000년에 개관된 한국가사문학관에서 배견(拜見)할 수 있다. 애음가(愛飮家)였고 술 권하는 노래(將進酒辭)로도 잘 알려진 정철이 선조에게 하사 받았다는 은배(銀杯)도 전시돼 있다. 몇 번을 봐도 여러 상상을 하게 만드는 술잔이다. 그 모습을 상기해 보니 내 몸이 참다못해 다시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어서 묵으러 가장께."

국수거리를 향해 발걸음은 경쾌해졌다. 선비의 곧은 정신은 대나무에 비유되고 담양은 대나무가 많기로 유명하다. 대나무 공예는 물론, 대통밥, 댓잎호떡, 댓잎동동주와 같은 다양한 대나무 관련 상품들이 관광객을 환영해준다. 막걸리 대신 댓잎동동주를 맛보기로 했다. 매콤달콤한 열무비빔국수와도, 단백함 속 감칠맛이 매력적인 멸치국수와도 조화를 잘 이룬다. 파전과의 궁합은 말할 나위 없다. 내 몸도 이제 만족했는지, 고요히 주인의 말을 받아들이기만 했다.

 

읍내를 벗어나 식영정, 가사문학관 등이 있는 남면까지 내려가 소쇄원(瀟灑園)을 거닐었다. 소쇄원은 조선중기 양산보가 조성한 민간 별서정원의 대표격이다. 겨울을 넘긴 초봄의 소쇄원은 나무들이 황금색으로 빛나 나름 운치가 있었다. 젊고 싱싱한 초목으로 둘러싸인 여름의 모습과는 또 다른 성숙한 멋이다.

담양을 다녀오면 위대한 '선배 학자'들의 삶을 접해서인지 항상 등이 꼿꼿하게 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 잡념을 버리고 나도 대나무처럼 곧바로 살아보자. 믿음을 친구 삼아 마음이 가는대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가슴이 후련해진 '햇병아리 학자'는 다시 광주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의 학업성과는 누가 알리. 더질더질.

곤도

유리|

일본 아오모리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제일문학부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 적벽가 > 예능보유자 송순섭과 판소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박사과정 중이다. 전공은 민속학. 주로 판소리, 농악 등 공연예술을 연구하고 있다.

글 사진 곤도 유리 / webmaster@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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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행 | 담양
우먼 | 2014.04.20 01:04:33 http://www.wkorva.or.kr/a/travel/1111

광주발 버스로 떠나는 콘짱의 한국기행. 일본인 유학생 콘짱이 광주 광천터미널을 시점으로 전국 곳곳을 돈다. 이번 달은 22번 승차홈에서 담양으로 향한다.



 



 

 
죽녹원.
 
 



 

 
소쇄원 광풍각.
 
 



 

 
국수거리에서 파는 비빔국수와 멸치국수.
 
 



 

 
댓잎동동주와 파전.
 
 



 

 
댓잎호떡.
 
 



 

 
소쇄원 제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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